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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야학 - 2001년도 신입교사 교육 자료집

by Ryu_Story 2012. 4. 21.

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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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야학 운영 관련 보고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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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야학 - 2001년 신입교사 교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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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록야학 - 참여관찰론 보고서        (안주영 선생님 대학 레포트 원문 2001년)

   상록야학-참여관찰론 보고서(안주영 선생님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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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야학 - 2001년 상반기 회계보고 관련 보고 (2002년)

   상록야학2001상반기회계보고관련보고(2002년).hwp

   상록야학2001상반기회계보고관련보고(2002년).pdf 

상록야학 관련 보고 (2002년)

  상록야학 관련 보고 (2002년). 2001년 7월 사직.hwp

  상록야학 관련 보고 (2002년). 2001년 7월 사직.pdf

 

 

 

 

참교육과

열린교육을

생각한다

 

 

사랑은 총체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하며

그 어떠한 한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청년의 열정과 사랑

때로는 분노가 모두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입니다.

실천을 나누는 늘푸른 배움터

소외된 삶의 밝은 내일을 준비하는 넉넉한 나눔의 공간… 상록야학!

 

 

 

 

2001년도 예비교사 교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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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야학사

편집부

하늘이 온통 뿌옇습니다. 낮게 드리워진 잿빛 구름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는 우리의 의식마저도 잿빛으로 물들이려 합니다. 이렇게 흐린 세상엔 흐린 의식들이 판을 치겠지요. 그러나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구름 너머에도 여전히 밝은 태양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해맑은 아기의 얼굴같은 금빛 태양이 말입니다.

저는 이맘때쯤이면 항상 존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의 존재, 너의 존재, 우리의 존재에 대해 말입니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해서 네가 있는 상황. 곧 우리 모두가 함께 있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 아닐까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까뮈는 ‘나는 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바꿔서 이야기했지요. 개인에 따라 그 존재의 이유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양식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위의 명제를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 ‘우리가 있으므로 우리가 존재한다’라고 바꿔 부르고 싶습니다.

조금은 역설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우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우리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작도 ‘우리’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끝도 ‘우리’에서 마무리되어져야 합니다. 이곳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로 함께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한 방울의 물방울이 쌓여서 결국은 바위를 깨뜨리고 맙니다. 나, 너, 우리 모두 이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어 보기로 합시다. 필시 좋은 우리가 만들어지고,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추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며,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공간인 야학을 좀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꾸며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좀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야학의 변천과 역사적 상황

먼저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야학이라는 것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하였고, 또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 싶습니다. 과거는 현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현재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료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침대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일제하의 야학

한국사회에서 야학의 태동시기는 일제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일제의 수탈에 저항하고 봉건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적 자각의 필요성을 느낀 선각자들이 야학을 설립하게 되는데, 공식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야학은 1907년에 세워진 ‘마산농민야학’이라고 합니다. 이를 시발로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민중의 역량이 성장하여 민족운동이 더한층 활기를 띠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토지에서, 탈락된 농민이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고, 노동자의 증가로 인해 노동문제가 대두, 노동야학이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1930년대에는 시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민족의식의 야학은 일부 폐쇄되어 식민성 야학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제하의 야학은 민족의 주체의식을 자각시키는 애국계몽운동의 차원에서, 일제에 대한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② 해방 이후 5.16 이전까지의 야학

이시기의 야학은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명맥이 거의 이어지지 못하나, 부분적으로 이승만 독재권력 하에서 발생하게 되는 소외계층인 몰락이농민과 도시빈민 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기회 제공 및 교화를 목적으로 한 천막야학 형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③ 1960년대 야학

해방 이후 자생적으로 경제체제를 갖추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산업구조의 파행성, 국민성의 부패 등의 현실은 빈민층의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5.16 이후 ‘재건대’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대체적인 학력 향상을 목표로 한 야학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검정고시 야학의 원류가 됩니다. 이 검정고시 야학은 발생당시의 사회적 특성상 관 주도하에서 주로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는데 교사들의 낭만적 관념성 민중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④ 1970년대 야학

이 시기에는 과도한 경제개방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 사회 불균형의 확대로 한국사회의 담지 세력인 노동자 계층이 사회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문제 해결에 노력을 기울이려는 추세가 노동현장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특히 70년대 벽두의 전태일 열사의 사건을 지식인이나 학생들에게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써 노동야학이 활성화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⑤ 1980년대 야학

여러 방면에서 정치 경제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야학이 교회야학, 농촌야학, 생활야학, 노동야학, 검시야학 등 여러 성격으로 분류되고 그 수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특히 이 시기의 야학은 점차 민중운동의 차원에서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는 70년대 개별야학의 문제점인 고립성, 분산성, 수공업성의 극복을 위해 야학협의회가 결성되어 야학 연합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도 1983년 야학연합회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게되어 많은 수의 노동야학이 와해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⑥ 1990년대의 야학

90년대 야학은 야학교육운동의 방향성과 목적의식의 새로운 정립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고, 야학을 이끌어가던 일꾼 주체들 역시 고립과 방황에 늪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침체기를 맞게된 야학들이 사회변화와 교사들과 학생구성들의 특성이 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야학의 전망을 확고히 세우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이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은 어찌보면 개별 야학들이 개별야학의 현실과 사회현실에 적절히 순응한 채 편리주의적 교육운동을 해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야학의 전망에 대해 , 80․9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야학의 효용성과 함께 그 수는 결코 줄어들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야학의 존재 자체가 모순인 상황에서 앞으로의 야학 역시 사회의 구조적인 제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시대 속에서, 역사 속에서 민중의 자각과 실천의 장으로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야학의 시기별 특징

시기

1. 일제하- 50년

2. 60년말-70년대초

3. 70년대 중후반

4. 70년대말

목적

문자 해독 교육

애국 계몽 운동으로발생,민족민중해방

정규교육에서소외된이들에게 지식습득,학력취득기회제공

현실적문화생활을하지못하는 민중을 위한 비정규학교

사회문제해결의 주체로써노동자민중의 자각과실천의지의 각성의 의식화 교육론주,교육기회제공측면

대상

농민,노동자,부녀자,도시빈민,빈민자녀,

아동

이농출신의도시빈민구두딱이,작역부,영세공장노동자,반실업자

도시빈민,빈민자녀,연소 노동자,공장노동자가 많아짐

연소노동자,공장노동자,빈민자제,(대기업노동자화됨)

진행자

지식인,학생,지방유지청년

봉사,박애적 대학생,

청년,사회사업가

봉사의지를 가진 대학생,지식청년,교회청년,학생운동출신

노동운동에관심을 갖는학내,교회대학생.일반대학생,지식청년

내용

한글,역사,한문,국어

수리,일어

정규교육기관의 동일한 검시교육

검시교육,생활교육,노동법규

노동법,사회과학적 역사,정치. 문화교양

검정고시대비,

장소

학교건물빌려 사용

지방유지건물

천막,판자집,학교,

시회봉사기관

교회내,영세판자촌,천먹,사회단체부설

주로교회내,교사자취방

비교

야학의태동,일제하의 민중들의 반봉건,반제,민중해방 운동으로질적인 발전

대게 검정고시대비 비정규적 학교의 형태를 갖고 있는 단일한 형태의 유형

민중문제접근에의 봉사개념이 사라짐 검시 야학은 제도권으로편입됨,프레이리의 ‘민중교육론도입’

대상이 공장 노동자로단일화.노동야학의 증가의식화론 기초가 쌓임

시기

5. 80년대

6. 80년대말

7. 90년대 초중반

목적

노동자의 정치적각성과 노동활동가 목표로 의식화 교육

의식화교육과 교육기회의 제공 공동존재

교육기회제공,인간관계를통한 공동체 지향

대상

연소,중소,대기업 노동자 도시빈민,

일반 노동자, 교육소외빈민,연소 노동자

생산직노동자,주부,3차산업 종사자,중고탈락자

진행자

학생운동원출신, 교회, 지식청년

노동운동의 관심 있는 지식 대학생, 일반 직장인

봉사위주의 대학생 및 직장인

내용

노동관련수업,사회과학및정치,사회 교육,검시,생활 교육

검시수업 및 노동, 사회과학관련수업

검시과목위주,문화,컴퓨터 과목등

장소

자취방, 교회, 성당, 소규모장소

주로 교회공간, 소수의 독립공간

자체공간의 확보,교회,지방자치단체건물

비교

야학의사회과학적운동론의논쟁 및 정립, 야학논쟁, 야학연합회사건

노동야학의발전적인해체와 통합, 생활야학 및 검시야학

야학의 폐교 및 감소,전반적으로 보수화 경향

우리는 앞에서 야학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되었으며 또 역사적 상황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야학이라는 것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필연적 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야학은 직접, 간접적으로 사회 운동적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그것을 좀더 구체화시켜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야학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21세기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떤 자리로 남아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는 것입니다.

야학은 일반적으로 운영현실이나 교과 내용 등의 외적 조건이 구분의 기준이 되는 노동 야학, 검시 야학, 생활 야학 등의 분류와 함께 야학의 목표와 방향성에 따른 질적 구분 형태인 진보, 보수야학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나름대로의 성격적 특성을 강조해 민중야학, 교회야학, 농촌야학 등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구분형태인 노동야학, 검시야학, 생활야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노동야학은 일제하에서부터 그 맥을 이어나와 오늘날까지도 야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로 근로자들의 교양과 주체적 인간형성을 위한 의식 개발을 목표로 삼으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급학교로의 진학보다는 현재적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로 자체내에서 만든 교재를 바탕으로 대화식 수업을 진행하며, 대개 6개월에서 1년 과정으로 신입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검시야학.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하여 그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과목이나 수업진행 방식 등에서 제도교육인 학교 교육과 가장 근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개 하루에 3~4시간의 수업을 통해 전 과정을 1년 반에서 2년 안에 마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검정고시 야학은 운영에 있어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환경적 어려움으로 인해 중도에서 배우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도 교육의 여러 모순을 함께 안고 있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전인교육에 대한 야학내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안되고 있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최근 야학의 여러 가지 변화들을 몇가지 살펴 보겠습니다.

- 야학의 방향성(목적)의 변화

검시․노동․생활야학 등 각자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고 존재해왔던 야학들의 ‘2001년 현재의 존재목적은 무엇일까?’ 에 대한 물음에 답해보는 것이 현재의 야학들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에 위치한 몇 개의 단위야학들의 목적을 살펴보면 생활야학과 검시대비야학이 혼재된 상태이다. 노동야학을 표방하는 단위야학은 거의 소멸된 상태이며, 검시야학 부분은 대형전문학원이 대체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현재의 야학의 상황은 과도기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 자리를 잃고 헤매고 있는 실정이며, 실제로 많은 야학들이 학생부족과 교사수급의 문제로 문을 닫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 학생구성의 변화

현재 서울소재 5개 야학을 대상으로 학생의 연령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별

19세이하

20-29세

30-39세

40-49세

50-59세

합계

중등

8

2

1

11

2

2

1

11

3

19

고등

7

24

10

2

43

6

12

26

24

2

70

합계

15

46

39

38

5

143

- 70-80年代 그리고 90年代 중반까지의 학생들의 연령층은 10-20代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이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고 따라서 교육에서 완전히 소외된 상태였고, 그래서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많은 야학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생의 구성 연령층은 그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90년대 중반부터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어서 지금의 구성비율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표에서 보다시피 30-40代 주부들이 상당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며, 과거의 공장 근로자들의 비율은 현저히 감소한 추세입니다. 표에서 나타나는 10대 후반의 학생들 대부분은 경제적 여건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도권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결손가정 등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뛰쳐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청소년들을 감싸고 나갈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야학들에 있어서 이들의 중도탈랄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연령층이 확대됨에 따라서 야학의 교육부문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머니들의 사고와 청년들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고 교육의 초점과 관심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현재 야학들 대부분이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야학들은 그에 따른 교육프로그램 변화라든지, 생활. 문화수업의 소재 변화등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문인력의 부족과 교사들의 짧은 야학활동 주기 등으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 교사 구성의 변화

교사의 흐름은 학생 변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는데, 그것은 앞서 언급한 학생의 변화가 대상층의 변화로 이야기 할 수 있음에 반해 교사의 경우 의식의 변화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70․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 학생운동에서 노동자 중심의 조직체로의 변화등을 겪으면서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성격 및 방향성의 변화들이 있었고, 이는 90년대 야학교사들의 변화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90년대 이후 야학을 찾아오는 교사의 경우 그 목적이 ‘봉사’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어 지고 있는 점은 교사들의 의식 변화의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야학사를 정리하며

앞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야학은 넓게 생각해 볼 때 전체적인 사회 구조와 모순의 산물입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야학은 사회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모순의 일부분을 해결해 주고 있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즉 야학은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조금씩 걷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학은 작게는 가정사정이나 개인사정, 경제적 사정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장(場)의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얘기함으로써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의 역할도 해 줍니다. 또한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대 사회적 운동의 실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야학은 넓게는 사회의 어둠을 줄여나가고, 작게는 개인의 자아실현의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학은 야학과 같은 비정상적인 교육기관이 필요없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야학이 필요없는 사회가 되기 위해 야학은 필요하며, 역설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교육의 기회가 부여될 때, 우리들의 의식이 계발될 때 너, 나, 우리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사회풍토가 되었을 때, 진정 야학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야학은 이를 위해 주변의 조그만 일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실천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 실천의식이 쌓여나갈 때 비로소 우리가 생각하던 이상은 현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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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상록야학 속으로 들어가기

과도기 속의 상록야학

국어교사 안주영

서론-접근하기

내게 익숙한 공간을 낯선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몇 시간을 있어도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상록야학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술자리를 갖고, 어떻게 춤을 추고, 어떻게 토론하는지를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속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많이 빠져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고민하고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나는 야학, 그 중에서도 상록야학이 갖는 색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상록야학이라는 오래된 조직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알아보고, 현재와 미래의 빠른 변화의 흐름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자신의 조직을 유지해 나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그 속에서 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현재 야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본론

1. 상록야학으로 들어서기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건물의 2층 창문에 ‘상록 중․고등학교, 상록야학’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건물 자체도 낡아 보이고, 창문에 붙인 글자도 오래되어 색이 바래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깨끗한 새것으로 바꾸어 붙이려 하지 않는다. 그 글자는 회기역에서 바로 보이는, 즉 가장 먼저 외부인의 눈에 띠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록야학의 사람들은 그 색이 바랜 글자를 여전히 달고 있다.

또한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상록 중․고등학교’라고 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상록야학의 구성원인 자신이 밤에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남들이 자신을 야학의 학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일반 중․고등학생처럼 봐주기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야학’이라는 단어속에는 사회적․역사적인 의미가 어느정도 남아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들을 보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야학’은 1960년대부터 있었던 것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들이 실제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처지더라도 그것을 남들이 인식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또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그들의 가난은 빈부의 상대적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가난이지, 의식주의 생활이 어려운 절대적 가난은 아니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가난한 이들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나는데, 상록야학의 이름에 대한 질문에서 학생들은 ‘상록야학’보다는 ‘상록학교’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질문: 가장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는 학교 명칭과 그 이유는?

<학생>

상록학교(10명): 야학이라는 말에서 고통이 느껴져서, 개념이 뚜렷해 보여서,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친근감이 있어서, 야학이라는 말이 없어서

상록야학(8명): 야학과 학교라는 명칭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간단명료하고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어서, 친근감도 느껴지고 발음상 편리해서, 학교 규모가 타 야학에 비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상록 중․고등학교(4명): 중․고등학교 과정을 정당하게 마치는 느낌이어서

상록 야간 중․고등학교(1명): 저녁에 공부하니까

상록수학교(1명): 자존심이 있잖아요

<교사>

늘푸른 학교 상록야학(6명): 제도권 학교와 차이도 있으며, 주경야독의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서

상록야학(3명): 전통적으로 익숙해진 이름이어서, 그렇게 많이 부르기 때문에, 솔직하고 당당해질 수 있어서

늘푸른 야학 상록학교(3명): 부르기에 부담없고 느낌이 좋아서, 우리 야학이 주는 인상이 다 들어가 있어서

상록학교(2명): 간결하고 명확해서, 가장 학교같은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상록 야간 중․고등학교(1명): 배움의 질적인 내용을 떠나 서로 의지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교지 『푸른그루』1999년 열세 번째 中-

여기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선호하는 이름과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야학’이라는 말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고, 또한 그 말이 없는 데서 친근감을 느낀다. 물론 ‘상록야학’이라는 명칭은 흔히들 쓰는 말이니만큼 그 말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야학’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느끼고, 심지어 ‘고통’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이에비해 교사들은 오히려 ‘야학’이라는 말에 더욱 큰 친근감을 느끼고, 또한 제도권학교(중․고등학교)와 차이를 부여한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므로 중․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나이 많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힘들다. 이들은 대부분 야학에 올 때, 자신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봉사정신(많건 적건 간에)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야학’이라는 말을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당해질 수 있다’고 한 말에는 동시에 그들이 어느정도 당당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야학’이 가지는 여러 의미들을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야학’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당당함’이라는 의미 속에 감추려하는 것이다.

상록야학의 학생들 중 일부는 자신이 야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전화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또한 교사들 중 일부도 자신이 야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직장이나 대학교 동료들이나 가족들에게 알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교무부장과의 술자리가 있었는데, 술을 몇 잔 마신 후 그는 자신이 몇 년 전까지 직장 동료들에게 야학에 다닌다는 것을 전혀 말하지 않았으며, 야학에서 전화가 올까봐 항상 초조해 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유를 물어보니까, 그는 “왠지 직장동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고 얘기했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인식, 즉 야학이라는 곳은 왠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 같고, 야학의 역사적 측면에서 운동권적 성격을 띤 적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의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상록야학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 속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로는 그것을 외부와 자신에게 표출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야학’이라는 단어가 역사적․사회적으로 형성된 개념과 인식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회기역을 나와서 상록야학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는 골목길이 보인다. 회기역에서 곧장 위로 올라가면 경희대학교와 통하므로 그 길은 술집들, 밥집들, 악세사리점 등 화려한 건물이 많이 보이고, 길도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이다. 그러나 상록야학의 건물로 통하는 길은 매우 비좁고, 조명도 없어서 밤에는 특히나 더 음침하다. 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화장품점이 있는데 그 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의 신세대 음악이 들린다. 그 길에 화장한 고등학생 남녀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심지어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 10여명이 길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럴때면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당황하여 황급히 건물로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2층에 ‘상록야학, 상록 중․고등학교’라고 써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1층에 보습학원의 간판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교실의 문이 있는데, 가끔 문이 열려 있을 때면 깨끗한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왼쪽은 상담실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서면 낡은 페인트칠 위에 상록야학의 공지사항을 쓴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2층에 올라서면 나무판에 ‘상록야학’이라고 쓴 간판이 문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문 위에 붙어있어 잘 눈에 띠지는 않는다.

그 문의 오른쪽으로는 컴퓨터실의 문이 있는데, 대개 잠겨있다. 요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고자 인터넷 교육을 시도하고 있으나 컴퓨터의 서버 접속에 자꾸 문제가 발생하고, 컴퓨터가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학생의 정규수업을 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모둠(특별활동)시간에 컴퓨터반이 있어서 학생들 몇 명은 컴퓨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해마다 신청자가 모자른 다른 모둠반들과는 달리, 컴퓨터반은 매 년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곤란을 겪을 지경이다. 야학의 학생들도 변화하는 시기에 맞추어 자신도 컴퓨터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40-50대의 학생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시대에 뒤쳐진 듯한 느낌을 없애고자 컴퓨터를 배우려 하고, 10-20대의 학생들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 컴퓨터를 배우고자 한다. 따라서 이들의 수요는 점점 많아지고 있으나 현재 야학의 재정상 이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기가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 상록야학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전에 야학교사였던 사람이 컴퓨터를 기증하고 있고, 여러 기관에서 컴퓨터를 새로 바꿀 때 그 전에 쓰던 컴퓨터를 기증하는 일도 있다. 이렇게 컴퓨터를 늘리고, 그 컴퓨터에 인터넷을 설치해 놓고 있다. 물론, 아직은 컴퓨터실의 공간이 비좁고, 컴퓨터도 낡고 10여대 밖에 안되지만, 이 문제를 놓고 다각도로 방법을 찾으려 한다.

2, 상록야학으로 들어가기

1)변화양상

상록야학은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 20분까지 40분씩 4교시 수업을 하고, 1, 2 교시를 연달아 한 후에 10분 쉬고, 3, 4교시를 연달아 한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한다. 이러한 수업시간은 1976년 3월 5일에 개교할 때와는 조금 다르다.

당시 중랑천 변에는 약 만 채의 영세민이 무허가 판자촌에 밀집되어 미취학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가정이 어려워 배움의 기회를 잃고 배움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중학교 과정의 교육을 1년 과정으로 이수시켜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 새마을 상록중학교는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50분 수업으로 하루 3시간의 배움터에는 신입생 40명과 교사 8명이 모였습니다.

-교감선생님, 「1976-1996 상록야학의 출발, 주경야독의 합창속에서」中

상록야학의 개교 때에는 7시부터 10시까지 50분씩 3교시를 했으나 지금은 7시 30분부터 10시 20분까지 40분씩 4교시를 한다. 또한 그 때는 중학교 1년 과정만 있었는데, 지금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2년 과정이다. 이렇게 바뀐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우선, 시간을 7시에서 7시 30분으로 바꾼 것은 학생의 연령층이 점점 직장을 가진 20대, 30대, 40대, 심지어 50대까지로 다양화된 데에 있다. 직장을 마치고 오려면 아무래도 7시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또 3교시에서 4교시로 같은 시간 속에 수업 회수는 늘린 것은 과목을 다양하게 해서 다양한 검시과목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음악, 미술, 한문, 교양, 한울(학급회의), 모둠(특별활동)같은 시간을 넣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야학이 너무 검시를 위주로 하는 것을 막고자 한 노력이었다.

또 1년과정을 2년으로 늘린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학생들의 연령층의 변화에 맞추고자 한 것이었다.

숙명처럼 주어진 가난에 울며 배움을 일찍 포기하고 거친 세파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학생들. 외딴섬에서 첩첩산중 시골에서 상경해 와 도시의 변두리를 서성거리며 남몰래 울던 수많은 학생들. 무거운 선반을 만지고 재봉틀을 돌리고 구두를 닦고 물건을 배달하며 사환 등으로 생활하면서도 배움을 찾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탈선의 소지가 너무도 심각하게 주위에 널려 있는 오늘날의 혼탁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근로 청소년들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손을 잡을 때, 병역 문제 등과 객지 생활의 어려움으로 헤매이며 그들이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다시 찾은 정든 학교를 또 계속하지 못하고 그들이 중도에서 떠나야 할 때 삶의 힘겨운 무게를 느껴 봅니다.

-최대천(교감), 「1976-1996 상록야학의 출발, 주경야독의 합창속에서」中

1980년대는 이처럼 가난에 찌들어 어쩔 수 없이 야학을 찾은 근로 청소년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이제는 가난에 찌들어 공부를 도저히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찾기가 힘든 상황이다.

(인터뷰 中-5년이상 상록야학 교사를 한 사람-생물교사)

-교감선생님은 ‘야학은 없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데요. 정말로 제도권의 학생들이 늘어났다면 야학이 없어지고 제도권학교가 늘어나는 것은 올바른 현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 야학에 오는 아이들은 양부모가 모두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거든요. 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둔 건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서적인 이유가 더 큰 거죠. 그런데 야학의 시스템은 경제적 이유만 돌봐 왔거든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죠.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데, 담임들조차 그렇지 못하는데요.

-또한 야학의 중요한 경향 중의 하나가 나이든 사람, 특히 30-40대 주부들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90년대 중반 이후로 제가 있었을 때를 보면요. 아주머니의 비율이 해마다 고 10회¼-고 11회⅓-고 12회½-고 13회⅔-고 14회¾-그리고 현재 고 15회는 거의 100%라고 봐야죠.그렇게 나이드신 주부들이 늘어나니까 상록 시스템도 그렇게 변하고, 상록 시스템이 그렇게 변하니까 또 나이든 사람이 늘어나고…악순환이죠. 그러다보니까 나이 어린 학생들이 자꾸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죠.

실제로 내가 수업에 들어가는 중 3반의 경우, 이들이 맨 처음 입학할 때부터 지켜봐 왔는데, 처음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13살-20대까지의 학생들이 5-6명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1년 남짓해서 그만두었다. 13살이었던 두 남자아이가 중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가정문제 때문이었다. 그들의 부모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그들은 혼란스러웠고, 부모는 그런 그들에게 학교를 다닐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중 한 아이의 어머니는 오히려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말고, 검정고시를 빨리 합격해서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이 처음에는 꾸준히 야학에 나오다가 그 두 아이가 친해져서 둘이 같이 빠지는 날이 많아지는 거였다. 그러다가 어느 일요일에 야학에서 그 두 아이와 그 아이들보다 나이가 서너살은 많은 두 여고생이 컵라면을 끓여먹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 뒤 그들은 종종 야학에 숨어있는 것이 발견되다가 들키자 그 뒤부터 야학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6시에 하는 교사회의에서 큰 문제화되자 그때서야 교사들은 그 아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다. 그 문제의 핵심에는 그 아이들의 잘못을 걱정하는 것도 있었으나, 그 아이들이 야학의 열쇠를 가지고 아무 때나 들어와서 라면을 끓여먹으면 불이라도 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컸다.

나 역시 그제서야 그 아이들이 그동안 한 아이의 자취방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며 생활을 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여고생을 채팅을 통해 만나서 함께 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안 후 가끔 길에서 그 아이들과 마주쳐도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말해 주고, 혼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수업에 들어오는 다른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인터뷰를 했던 교사가 그나마 그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탁구도 치러 가고 했었는데,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이지 않자 곧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이 상록야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물론 그 아이들의 끈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야학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야학의 수업시간은 물론 행사도 모두 30-40대의 아줌마들을 위주로 행해지고 있다. 야학의 나이든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인 수학시간에 그것을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쉬운 계산문제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것을 빨리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든 여학생이 태반이므로 그들이 이해할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시를 빨리 합격하고 싶어하는 나이 어린 학생들은 그게 불만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상록야학의 행사를 보면,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술자리문화와 노래방에서의 춤문화이다. 야학의 술자리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부분 어떤 분위기의 술자리를 고집한다. 술의 종류는 막걸리를 선호하는데, (젊은 층이 많이 있을 때는 맥주를 마시기도 하지만) 상록야학에서 행사가 끝나고 다같이 술을 마시러 갈 때는 대부분 야학 근처의 파전 골목에 있는 ‘낙서집’이나 그 옆의 다른 막걸리집에 간다. 가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학생, 교사들에게 노래를 종종 시키는데, 30-40대 아줌마들이 대부분인 학생들은 주로 그 시대의 유행가 트롯트를 부른다. 그 속에서 대학생 교사들은 무엇을 불러야 할지 굉장히 망설인 끝에 결국에 가서는 ‘아파트’나 ‘남행열차’같은 학생들의 기호에 맞는 노래를 아는 정도에서 찾아서 부르곤 한다. 간혹 어린 학생이나 어린 교사들이 조용한 발라드를 부르면 나이 많은 여학생들은 노래를 잘 듣지 않고 서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자리가 끝나면 대부분 2차로 노래방에 가는데, 처음에는 각 반마다 방을 정해서 부른다. 노래는 거의 흥겨운 트롯트, 그것이 길게 이어진 ‘트롯트 메들리’같은 곡을 주로 택하고, 학생들은 노래가 나오자마자 일어서서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그 속에서 나이 어린 교사들, 특히 나이 어린 신입교사들은 무척 당황해하면서도 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기색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나이 어린 학생들이 그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아줌마들을 자신의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수업시간이나 행사에서 불만이 점점 많아지고, 더구나 행사에서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대인관계형성에 문제가 생겨 학교에 나오기가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의 야학은 70, 80년대처럼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잇기가 힘든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권리를 찾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야학은 학생들의 성, 연령의 변화속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 과도기에 있는 것이다.

2) 교사와 학생 간의 의사소통

상록야학은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과정으로 되어있고, 교실은 중학교 2개반, 고등학교 2개반이 있다. 8개월이 정규 학교의 1년에 해당하는 것이고, 신입생 입학식은 9월 초에 한다.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는 것인데, 이는 검정고시가 매년 4월, 8월에 있으므로 이것이 모두 끝난 뒤인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 하에 정한 것이다.

상록야학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교무실이다. 교무실에는 정규 학교의 교무실처럼 교사마다 각 개인의 책상은 없다. 몇 개의 책상을 붙여서 가운데에 놓았고, 그 옆으로 새로 산 복사기가 보이고, 그 옆에는 컴퓨터 한 대가 있다. 나무로 된 의자는 너무 오래되어 까실한 나무가시가 몸에 박힐 정도이다.

교무실의 문이 오른쪽으로 붙어있는 통로는 ㄱ자로 꺽어 들어가면 교실로 통한다. 교무실의 문 바로 옆에는 커다란 유리가 달려있어 학생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 유리 밑에는 ‘즐거운 눈인사’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학생들과 교사들이 눈인사를 하기 위해서 만든 유리라고 한 말인 듯 하다. 실제로 그 유리를 보며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과 지나가는 학생들의 눈이 서로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일 경우에는 어색하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교사들 중에는 두 반 이상 수업을 하고, 오래 상록야학 생활을 해서 아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수업을 하는 한 반의 학생만을 알고, 아직은 상록야학에 어색한 신입교사들도 있다. 신입교사들은(특히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과 눈인사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학생들이 처음 중학교에 입학하면 인원이 약 50-60명에 이른다. 중 1반은 그래서 교실이 가장 넓고, 조용한 곳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 이들이 중 2-2학기가 되면 그 맞은편 교실로 옮겨야 한다. 그 교실은 바로 회기역 옆에 있어서 약 10분 간격으로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교실도 전의 교실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이 때 이들의 인원은 20-25명으로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다. 또 1년이 지나 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들의 인원은 10명 이내로 줄어드는 대신 새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사람이 생겨나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의 인원은 25-30명 가까이로 된다. 이 교실도 역시 중 1반 교실처럼 회기역과 면해 있는 곳 맞은 편이므로 훨씬 조용하고, 교실도 중 1반보다는 작지만 중2반보다는 크다. 그러나 이들이 고2-2학기가 되어 또 교실을 옮길 때는 이들의 인원이 다시 10-15명으로 줄어 고 2반은 가장 크기가 작은 교실, 회기역과 면해 있는 시끄러운 교실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학년에 따라 학생수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먼저 학생들 스스로의 끈기가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사회적 원인과 상록야학 내부의 원인이 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70-80년대를 거쳐오는 동안 여성이 교육을 받을 기회는 남성이 교육을 받을 기회보다 현저히 낮았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여성은 같은 형제인 남성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은 희생되어야 했고, 심지어 자신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을 잘 보여준 드라마가 몇 년 전에 MBC에서 한 드라마 ‘아들과 딸’일 것이다. 이처럼 여성은 교육에 있어서 소외를 당해 왔으므로 그들이 자라 40-50대가 되고 이제 경제적 여건이 어느정도 나아졌을 때에는 배움의 한을 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배움의 한’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은 수업시간에 보여주는 그들의 놀라운 집중력과 노력을 생각해서이다. 그들은 나이가 많으므로 수학이나 과학같은 사고의 체계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수록 그 수업시간에 집착하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검정고시가 다가오면 보충을 해 달라고 요구해서 일요일까지 야학에 나온다. 50대 후반이나 심지어 60대의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해도 칠판에 써있는 것은 무조건 모두 받아적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로 거기서 50-60대의 나이 많은 학생들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하는 수업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지난 삶에 대한 한과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그런 한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같은 과목을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다른 사람에 맞춰서 하는 진도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칠판에 있는 것을 열심히 받아 적지만, 그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자신이 공부할 자신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나는 이제 너무 늦어버렸다는 한스러움만 남아서 야학을 그만 두는 것이다.

상록야학의 주된 학생인 40-50대가 야학을 그만두는 이유는 대부분 사회적 원인이다. 그들은 우선 가정에서 주부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무슨 다른 일을 하든, 가정의 일을 거의 도맡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강한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여성이 더구나 밤에 야학에 다니는 것은 가족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하고, 또한 본인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매일 매일 계속되는 야학에서의 학생과 가정에서의 주부의 역할 모두를 잘 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또한 상록야학의 이들 여학생 중 50%정도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여성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 남편없이 혼자가 된 경우, 그리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등 여성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는 많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야학에 입학했어도, 직장에서 야근을 하는 경우나 집안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빠지게 된다. 그렇게 빠지게 되면 진도를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야학을 그만 두게 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10-20대의 젊은 학생들이 야학을 그만두는 이유는 야학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40-50대 여학생에게 치우쳐 그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다는 데 1차적 원인이 있다. 또한 그들이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유가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 다른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학의 교사들은 그러한 이유들을 모두 포용해 주고 관심을 가져 줄만큼 시간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교사들 또한 대학생 아니면 직장인이므로 자신의 주된 시간을 야학에서 보내기가 힘들다. 또한 대학생 교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 야학의 수업시간을 갑자기 다른 사람과 바꾸거나, 아예 아무 말도 없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장인들 역시 갑자기 야근을 할 경우에, 그 야학시간에 대신 수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 수업시간은 빌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교사들이 수업시간을 지키기도 벅찬 경우가 있는데, 더구나 그 외에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들과 상담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교사 결강에 대해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고 솔직히 고민을 했다. 이거 상록에서 괜히 미운 털 박히는 거나 아닌가 해서였다. 그래서 편집부로부터 여러 번 독촉을 받으면서도 미루어 오다가 오늘에야 이 글을 쓴다. 상록에 다니시는 선생님들은 정말 훌륭하시고, 우리가 본받을 게 많은 분들이시다. 요즘같이 쾌락과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그 분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교사 분들의 결강문제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결강 그 자체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곳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결강은 절대 안되는 것이다. 결강을 꼭 해야 될 입장이라면 미리 양해를 구해 어떤 조치를 취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1999년 총학생회장 고 2 「결강, 이젠 그만!」-

총학생회장은 교사 결강 문제를 놓고 교사들에게 말할 때 무척 조심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가 자신이 약속한 수업시간을 빠지는 것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연한 것을 교사에게 요구할 때조차 학생들은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학생들이 자신은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야학에 다니고 있고, 그것은 모두 여러 교사들이 무료로 가르쳐주기 때문이므로,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교사들에게 감히 뭐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록야학에서는 시험을 2달에 한 번씩 보는데, 어떤 과목을 보기로 약속한 시간에 교사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도 학생들은 마음 속으로는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억지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교사가 수업시간에 교과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말하지 않고, 교과 외의 다른 얘기만 매 번 한다고 해도 그 교사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진 못한다. 물론 그것이 심해지면 간혹 어떤 학생이 “선생님, 수업해요”라든지 “선생님, 좀 쉽게 가르쳐 주세요”같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간접적으로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간혹 상록야학의 학생이 교사를 심할 정도로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정규 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단순히 속으로 짝사랑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직접적으로 표출된다. 몇 년전에 어떤 학생이 자신보다 서너살 많은 여교사를 짝사랑해서 여교사를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괴롭히다가 끝내는 영동교를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또 내가 사귀고 있는 남교사를 짝사랑하는 10살 아래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우리가 같이 있는 걸 본 후로 나에게 전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 핸드폰으로 욕을 담은 메세지를 보낸 일도 있다. 그 여학생은 지금은 야학에 다니지 않지만, 17살인 그 아이는 대검을 지난 4월에 합격하고 나서 야학에서 가는 수학여행에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여행 내내 나를 못 본 척 했다.

정규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결혼까지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상록야학에서는 그런 경우는 정말 생각하기가 힘들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볼 때, 처음부터 마음의 벽을 갖고,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배우는 자들이라는 전제 하에 그들을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따뜻하게 친절을 베풀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다가서는 것은 차단하는 것이다.

신림동에 있는 ‘남부야학’의 경우 학생을 ‘학강’이라고 부르고, 교사를 ‘강학’이라고 부름으로써 교사와 학생 간의 커다란 간격을 조금이라고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상록야학에서는 이런 단어가 없다. 상록야학은 정규 학교와 비슷한 교실 구조 속에서 정규학교와 비슷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정규학교와 똑같은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거리는 정규학교 못지 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3) 과도기 속의 상록야학

①주 5일제 수업

96년에 주 5일제 수업제도에 대한 격렬한 논의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수업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부담스러우므로 토요일을 빼고 주 5일제 수업을 하자는 제안이 그 당시 신입교사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상록야학에 오래 있었던 교사들은 주 5일을 하면 학생들이 수업의 리듬이 깨지고, 또 토요일을 빼면 교양, 한문, 음악, 미술 같은 과목들을 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검정고시를 위한 야학을 되어 버린다면서 반대했다. 두 집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공청회가 있었는데, 학생들은 결국 주 6일제에 더 많이 손들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주 6일 수업을 하면 모두 나오지 못하고, 특히 토요일에는 빠지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더 많이 수업을 해 주면 좋다는 생각과 왠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욕심으로 인해 주 6일제 수업에 더 많이 찬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논의의 결과는 있었다. 그 전에는 공휴일에도 수업을 했는데, 절충안으로 공휴일은 쉬게 되었다. 매년 ‘상록의 밤’이라는 학예발표회를 했었는데, 그것이 부담되므로 한해는 일일호프를 하고 격년마다 번갈아 하기로 했다.

②교감선생님

상록야학의 중요한 중심축으로 교감선생님을 들 수 있다. 교장선생님은 상록야학의 개교부터 재정적 측면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으로, 지금은 중요한 학교 행사때만 와서 ‘교장 선생님 말씀’을 하시는, 상록야학에 있어 고마우신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다르다. 개교 이래로 상록야학의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들을 해 왔다. 지금도 4반 모두 국어 수업을 한 시간씩 무조건 한다. 일년의 시간표를 정할 때, 교감선생님의 국어 수업시간을 그가 원하는 시간에 배치한 후에 나머지 수업 시간표를 정한다. 그가 정하는 수업 시간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또한 그가 들어가는 네 반의 1시간의 국어 수업시간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국어 시간이 3시간 있는데, 그 중에서 2시간은 다른 국어 교사가 하고, 1시간을 교감선생님이 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렇게 한 과목에 교사가 둘일 경우에 시험 문제를 나눠서 내고 한 시간에 시험을 보는데, 유독 국어 시험만 두 시간에 걸쳐 따로따로 봐서 나중에 두 개의 점수를 합치는 것이다.

몇 년전 주 5일제 수업 추진 논쟁과 교사조직 체계화 등 여러가지 여론이 있어서 교무부장을 직선제 선출 뽑고, 최교사는 교감선생님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그 때 교감선생님, 교무부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교무부장은 매년 8월 교사회의에서 선출되고 임기는 1년이다, 한번은 학교 행사 일정상 교사회의에서 시험요일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 때, 교감선생님은 교사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시험요일이 바뀐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즉각 다시 바꿨다. 이것을 놓고 교무부장이 교사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항의 했지만, 이미 시험시간표가 짜여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항의만 한채 결국 그대로 진행시킬 수 밖에 없었다.

상록야학은 회계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투명하지 못하다. 교무부장이 지금의 상록야학의 교사회의 회계보고를 투명하게 하라고 요구 했지만, 매월 교사회의 회계보고는 아직도 총수입, 총지출, 총잔액이 보고되지 않은 채 비정상적인 회계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③월반, 편입학생

상록야학은 중 2년, 고 2년 과정으로 되어있다. 학생이 처음 중학교 과정에 입학하거나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전과목을 모두 들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중학교 과정에 입학한 학생은 중학교 2년 과정을 다 마쳐야 고등학교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중학교 과정을 하다가 40-50대 여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느리게 나가는 진도에 불만을 갖고 고등학교 과정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상록야학의 교사들, 특히 교감선생님과 야학에 오래 있던 교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한다. 이 교사들은 그 학생들이 월반을 하게 되면, 다른 학생들까지 월반을 부추기게 되고, 월반을 해도 진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반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힘들다고 하면서 반대한다.

또한 상록야학은 7, 8월에 주로 상록야학 근처의 지역에 신입생 광고를 붙이고, 8월에 신입생을 모집하여 9월 초에 입학식을 한다. 그런데 입학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입학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에는 학생들을 받아주지만, 학기가 시작된지 한참 후에는 학생들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중에 온 학생들은 처음 온 학생들과 진도가 많이 차이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이 중간에 들어오면 반 분위기에도 적응을 잘 할 수 없고, 같이 어울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록야학의 교사들은 4반을 각각 분리해 놓고, 그 반의 분위기도 각각 다르다고 규정짓고 있다. 또한 그 반의 구성원은 처음부터 상록야학의 과정에 따라 상록야학에서 규정한 과목들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야지 과정의 중간에 들어오거나, 과정의 중간에 일부를 건너 뛰는 것은 좋지 않다고 규정한다.

태청야학에서는 학생 본인이 월반을 원하는 경우에 담임과 주임 교사가 학생의 실력 점검을 통해 허용되고 있습니다. 태청야학의 경우 과목별(수준별) 분반 체제이기 때문에 월반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성급한 단정일 수 있으나 태청야학의 존재의미는 검정고시를 패스하는데 있어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있는 것 같습니다.

파랑새야학의 경우 중등 1년, 고등 1년 과정으로 수업 자체가 속성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월반의 여지는 없고 유급의 상황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나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진행의 속도가 부담이 되기에 진도를 앞서나가는 학생들의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월반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입학 초기에 본인의 실력대로 반이동이 있어서 반 분위기 저해나 편입의 부적응의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랑새 야학의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입학 초기부터 생활공동체로서의 야학의 입장/체제를 강력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에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기능적인 공간으로만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부야학은 10명 안팎의 학생이라서 월반이 융통성 있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본인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여 결정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예와 함께 기타 월반이 거론되고 있는 타 야학들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월반허용에 있어 야학의 규모와 교육기간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주시할 만한 점입니다. 야학의 규모가 작을수록, 교육기간이 짧을수록 월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적었다고 판단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상록야학같은 큰 규모의, 교육기간이 긴 야학) 월반 허용시 파급되는 바가 크기에 상당히 민감하고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신입교육> 월반문제의 인식과 대응」

97년 신입교사 제3토론팀 : 강산봉, 변성연, 이주한 (http://sangrok.yaho.cc/) -

이처럼 타 야학의 경우에는 월반문제를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비교적 융통성 있게 다루는 데 반해 상록야학은 월반문제를 신중히 고려한다. 2000년에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월반하고자 한 학생이 2명 있었는데, 이들 중 월반이 실제 가능했던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 1명 뿐이었다. 그 학생은 검정고시에도 합격하고, 상록야학에 매일 나와서 공부도 열심히 했던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의 월반을 허락해 준 과정에는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과의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월반을 허락해 준 것은 요즘 상록야학의 변화의 한 양상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④교사의 과목

99년에 처음 들어온 신입교사들 중, 영어교사를 하고 싶었는데 발음이 별로 좋지 않다는 몇 몇 교사들의 판단으로 윤리교사를 맡게 된 40대의 교사가 있었다. 그 교사는 일년동안 윤리교사를 했지만, 다음 해에는 영어교사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99년에 같이 들어온 한 영어교사가 다음 해에는 바꾸자고 제안해서 그 둘은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들을 당황하게 했고, 그 반의 담임교사는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상록야학은 2년제이므로 한번 과목을 맡으면 2년은 해야 하며,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 합의 하에 마음대로 과목을 바꾼 일은 이전에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과목을 바꾸지 못했고, 윤리교사였던 40대의 대학생은 상록야학을 그만두게 되었다.

결론-상록야학을 나오기

상록야학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 있다. 야학이라는 고정된 조직의 형태 안에서 시대의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껏 특정한 야학의 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그것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야학의 학생층이 변화했고, 학생들이 야학에서 원하는 것들도 변해 왔다. 그들은 이제 검정고시를 합격하고자 하는 욕구가 뚜렷하게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뚜렷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고된 생활에도 불구하고 야학에 꾸준히 나오는 것이다. 그들의 그러한 욕구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이것을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상록야학은 야학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학생들만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중도 탈락자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을 시간이 없고, 교사와 학생 간에는 벽이 존재한다.

상록야학은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존재해 왔으며, 견고한 조직적 틀 위에 놓여 있다. 남부야학이 99년에 교육청의 폐교조치를 받고 땅 주인의 이전 명령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남아있는 인원은 고작 몇 십명 뿐이었고, 남아있는 돈도 얼마 없었다. 그들은 그 때 심각한 존폐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상록야학은 그러한 존폐위기까지 간 적이 없다. 중간에 한 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쳐서 이 곳으로 이전한 이래로 앞으로 더 나은 공간으로의 이전까지 바라보고 있다.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할 경우에 이전할 준비까지도 미리 하고 있는 것이다. 튼튼한 재정적 기반 아래서, 개교부터 깊게 뿌리내린 교사들의 견고한 체제속에서 상록야학 이라는 조직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상록야학은 그러한 체제의 견고성에서 탈피하여 점차 개방적으로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도 역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고정된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록야학은 ‘야학’이라는 이전의 개념을 부정하면서 이 시대의 새로운 역할과 개념을 모색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제 상록야학은 인터넷 실습 수업까지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재정적, 공간적 한계가 있지만 변화에 발맞추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 상록야학만이 갖는 색깔, 상록야학이 가지는 역할을 계속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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